공부와는 담을 쌓고 못된 짓은 도맡아 하는 이 진사네 막내아들 ‘풍이’,어느 날 훈장님 심부름을 하다 장사에 눈을 뜨게 되는데… 이 진사는 장터가의 국밥집 주인이다. 상놈들이나 하는 장사, 그것도 온갖 장돌뱅이와 술주정꾼에게 국밥을 팔고 저녁이면 술을 파는 이 지저분한 장사에 양반인 이 진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땀을 흘리는 것이다. 체면이고 가문이고 나발이고 아궁이 속 장작불에 처박아 태운 지 오래. 오장육부는 꺼내서 강물에 던져버렸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문전옥답 다 팔아먹고 마누라가 처가에 가서 보릿자루 이고 올 때까지 공부했건만…. 그놈의 칠전팔기 좋아하네. 여덟번 과거에 미역국을 먹고 책이란 책은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고 고리채 영감에게 돈을 빌려 얼굴에 철판 깔고 국밥집을 차린 것이다.
이 진사는 아들 두 놈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떠맡겼다. 싹수가 보였다. 열여덟 살 맏아들 욱이는 벌써 초시에 합격했고, 과거에 합격하리라는 걸 훈장이 보장했다. 한눈팔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는 맏아들에게 마누라가 친정 가서 얻어오는 겉보리로 나물죽을 끓여 먹일 수는 없는 일이다. 욱이 아래 딸아이를 건너서 열세 살 막내아들 풍이는 서당에 다니지만 떡잎부터 글러 먹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못된 짓은 도맡아 했다. 콩서리, 수박서리에 닭서리까지 하고 다녔다. 제 아버지 이 진사로부터 매타작을 당하고, 제 형으로부터도 싸리나무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맞아 엉덩이와 장딴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어느 날 훈장님이 풍이에게 붓·벼루·먹을 사오라고 서른여섯 냥을 줬다. 학동들 열둘에게서 세냥씩 거둔 돈이다. 원체 훈장님 단골 문방 가게는 서로 잘 알고 거래도 자주 하는 터라 값이 정해져 있었다. 풍이는 돈을 들고 그 집에 가지 않았다. 풍이가 사는 고을은 조그마했지만 20리 밖에는 큰 고을이 있었다. 장터 규모가 비교되지 않았다. 풍이는 20리를 단숨에 걸어가 문방구를 직접 만들어 소매상에게 넘기는 ‘공장 겸 도매상’에 들러 훈장님이 사오라는 걸 모두 사고도 열두냥을 남겼다. 어린 풍이가 장사에 눈을 뜬 것이다.
풍이는 시간만 나면 나루터를 찾았다. 이 진사가 국밥집엔 아예 발도 못 들이게 해서 장터 쪽은 가지 않고 나루터로 달려갔다. 나룻배가 오가며 온갖 장사꾼이 갖은 물산들을 쏟아냈고, 어떨 때는 포졸이 오랏줄로 도둑을 묶어 배에서 내리기도 했다. 여우와 사슴을 메고 내리는 포수도 있었다.풍이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루터 주막집 주위를 맴도는 이상한 아지매도 풍이에게는 수수께끼였다. 동매라는 아지매는 얼굴에 분을 진하게 바르고, 육덕진 살이 비집어 나오도록 저고리는 짧았으며, 바짝 졸라맨 치마끈 밑으로는 수밀도 엉덩이를 흔들면서 웃음을 헤프게 흘리고 다니는 것이다. 한손엔 술잔을 들고 다른 한손엔 호리병을 들었다. 그녀는 들병이인 것이다.
꽃이 필 때는 벌과 나비가 찾아들지만 꽃이 질 때는 벌·나비는 고사하고 무당벌레도 고개를 돌린다. 화류계도 다를 바 없다. 꽃다운 이팔청춘에 동기가 돼 웃음을 날릴 때 남정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나비처럼 달려들지만, 세월이 흘러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유방은 늘어지고 엉덩이가 처지면 지는 꽃이 돼 절름발이도 외면한다. 여기저기 불을 밝힌 홍등 아래 까르르 웃음소리 피어나는 일류 기생집에서 밀려난 퇴기는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다가 삼패 기생이 되고, 그 세계에서도 밀려나면 화류계 가장 밑바닥인 들병이가 되는 것이다.
명분은 잔술을 파는 것이지만 실은 몸을 팔고 형편없는 해웃값을 받는다. 주막 주위를 근거지로 삼아야 손님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막의 객방에서 잠을 자는 장돌뱅이, 나그네,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친 동네 머슴, 주머니 얄팍한 홀아비와 총각이 그녀의 고객이다.주막의 객방은 넓은 방이 하나뿐이라서 이 사람 저 사람이 함께 잔다. 그래서 들병이가 손님과 엉겨붙는 곳은 주로 주막에서 가까운 숲속이다. 들병이 동매 아지매가 손님을 받는 곳은 주막에서 쉰 걸음도 안되는 솔숲 속, 잡목 넝쿨이 벽을 친 곳에 돗자리를 깔아놓은 오목한 곳이다. 산에서 캐다 심어놓은 더덕이 울타리 겸 방향제 역할을 한다.어느 날 대낮에 풍이가 기절초풍할 모습을 보게 된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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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편 시작 >
■글공부와 원수진 놈<하편 >■
장사에 눈 뜬 ‘풍이’, 들병이 아지매의 한탄을 듣다 문득 묘안이 떠오르는데… 그날도 풍이는 서당이 끝나자마자 나루터로 달려갔다. 나루터 주막 주위를 맴도는 술병 든 동매 아지매와 마주치자 풍이가 넉살 좋게 말했다. “이모, 오늘 시집가는 날이요? 얼굴이 달덩이 같구먼요.” 들병이 아지매가 씩 웃었다. 나룻배에서 내린 손님 중에 벌써부터 불콰하게 한잔 걸친 남정네가 버드나무에 기대선 들병이에게 수작을 걸었다. 둘이서 킬킬거리더니 솔숲 아지매 본부로 향했다. 아지매가 앞장서고 술 취한 남정네가 뒤따랐다. 풍이는 뒷산을 내려오다가 들병이 동매 아지매에게 주려고 감을 하나 따서 아지매 본부로 갔다. ‘헉헉’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생전 처음 희한한 모습을 본 것이다. 두세 살 많은 동네 형들로부터 얘기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풍이는 수없이 그 모습을 훔쳐보게 됐다. 어떤 날은 들병이가 남자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그 짓을 하다가 풍이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엉겨 붙기 전에 술을 한잔 마신 남정네가 말했다. “오늘 가진 돈이 10전밖에 없는데 남은 10전은 치부책에 외상 달아놓으면 안될까?” 결국 그렇게 됐다. 풍이가 놀란 것은 그 값이 불과 20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당에서 벼루·먹·붓을 사다주고 12냥이나 남겼는데, 몸을 바치고도 20냥이 아니라 20전이라!하루는 들병이 아지매가 톱과 낫을 들고 뒷산으로 가 나뭇가지를 베기에 풍이가 이유를 물었다. “입동이 다가오니 추워서 안 되겠어. 바람이라도 막게 움막을 지어야 할까 봐.” 풍이 눈에도 들병이 신세가 처량해 보였다. 열세 살밖에 안됐지만 그래도 남자라고 풍이의 톱질과 낫질이 나았다. 나뭇가지로 골격을 만들고 칡넝쿨로 묶은 후 솔가지를 베어와 그 위를 덮으니 눈이 와도 끄떡없어졌다.
짧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는데 들병이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풍이가 나를 위해 집 한채를 지어줬는데 나는 무엇으로 보답하지? 너 고추가 익었어? 한번 줄까?” 사실 풍이 고추는 빳빳해졌지만 고개를 흔들며 “구경만 시켜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동매 아지매가 “실컷 구경해라” 하며 누워서 치마를 올리고 다리를 벌렸다. 솔잎 사이로 한 가닥 햇살이 들어와 들병이의 그것을 비추자 새까만 거웃이 황금처럼 반짝였다.“이모, 잠은 어디서 자요?” “어둠살이 내리면 주막으로 가 술상도 차려주고 설거지도 해주고 손님이 남긴 밥 한술 챙겨 먹고 안방 윗목에서 새우잠을 자지.” 주막은 큰 객방 하나에 이 사람 저 사람 함께 자서 들병이가 돈벌이할 틈은 없고, 꽤 괜찮은 해웃값을 내고 객고를 풀려는 손님은 주모 차지다. 움막 속에 풍이를 앉혀놓고 호리병에 남은 술을 다 떠 마시더니 들병이는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엉엉 울었다.
나루터와 주막 주위에서 들병이가 사라지고 풍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달쯤 지나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동짓달, 풍이가 주막에 나타나 객방에 군불 때는 걸 도와주더니 객방으로 들어갔다. “먼 길 오시느라 다리 아프시죠.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 10전만 받습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홍삼장수가 풍이를 불렀다. “여기 오너라.” “대인, 여기 근육이 뭉쳤네요.” 풍이가 다리를 한참 동안 주무르다 말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홍삼장수 귀에다 뭐라고 수군댔다. 그러자 홍삼장수 권 대인이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더니 벌떡 일어나 옷을 입었다.홍삼장수는 풍이를 따라 뒷산 오솔길로 들어섰다. “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거의 다 왔어요. 받아보면 알잖아요. 지압 전문가는 의원과 한가지예요. 안마하고는 달라요.” 나루터에서 한식경쯤 되는 곳에 노스님이 돌아가시고 잡초가 우거진 빈 암자가 있었다. 그동안 풍이와 들병이가 그곳을 쓸고 닦고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넣어 놨다. 풍이 말대로 암자에는 지압 전문가인 여승이 고깔을 푹 눌러 쓰고 있었다. 여승이 뜨끈한 녹차를 내왔다.
적막강산 산속 암자에 홍삼장수는 벌거벗은 채 배를 깔고 누웠고 지압 여승은 종아리부터 허벅지를 거쳐 둔부까지 야들야들한 두 손으로 지압을 했다. “대인, 돌아누우세요.” 벌써 돌덩어리가 된 양물은 천장을 뚫을 기세다. 홍삼장수의 통사정에 여승은 양물을 지압했고 결국은 절구를 찧고 말았다. 들병이가 그 짓 해서 받은 해웃값의 스무 배를 받았다.그해 겨울이 지났을 때 여승과 풍이가 수입금을 반씩 나눴더니 소 한 마리씩 살 돈이었다. 풍이는 결국 고향을 등지고 나갔다가 스무 살이 됐을 때 거상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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